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브르 코르닐로프 (문단 편집) === [[러시아 제국]]의 군인, 코르닐로프 === 라브르 코르닐로프의 유년시절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적다. 확실한 점은 1870년 [[외스케멘|우스티카메노고르스크]]에서 시베리아 [[카자크]]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. 1885년 [[옴스크]]의 군사학교에 입학했고 188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하일롭스키 포병학교에 입학해 튀르케스탄 군관구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. 이 시기에 [[동투르키스탄]], [[페르시아]], [[아프가니스탄]] 등 [[중앙아시아]]를 탐사하고 현지 주민들의 언어를 배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. 그가 정보장교였고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[[러시아 제국]]이 [[영국]]과 [[그레이트 게임]]을 벌이던 와중임을 고려한다면 그의 탐사는 의미심장해진다. [[러일전쟁]] 때는 극동으로 파견되어 참모장으로 산데푸 전투, [[봉천 전투|묵던 전투]]에서 참전했고 용맹과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고 대령으로 진급한다. 전후에는 중국에 군사무관으로 파견되었고 중국에서도 중국어를 배우고 각지를 탐험하며 이에대한 자세한 보고서를 본국에 보내기도 했다. 중국에서 귀환한 이후에는 몽골 서부와 카쉬가르 등 중국 국경 지대에서 중-러 국경에서 근무했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단장으로 주둔하는 등 거의 대부분의 생애를 아시아 방면에서 거쳐왔다. 1914년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자 그는 최전선으로 보내져 갈리치아, 카르파티아 방면에서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군을 상대하게 되었고 이듬해에는 소장으로 진급했다. 그러나 바로 그 해에 후퇴하던 러시아 본대에서 낙오한 그의 사단은 오헝 군에 포위되었고 그도 사단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. 포로로서의 대우는 신사적이었으며 참모총장인 [[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|회첸도르프]] 원수와의 개인적인 면담을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. 그러나 1916년 코르닐로프는 자력으로 탈출해 업무에 복귀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